인사동

정태춘


장승 하나 뻗쳐 놓고
앗따 번쩍 유리 속의 골동품
버려진 저 왕릉 두루 파헤쳐
이놈 저놈 손 벌린 돈딱지

쇠죽통에 꽃 담아 놓고
상석 끌어다 곁에 박아 놓고
허물어진 종가 세간살이
때 빼고 광 내어 인사동

있는 사람, 꾸민 사람 납신다
불경기에 파장 떨이 다 넘어가도
고단한 신세 귀한데 가니
침 발라 기름 발라 인사동

놋요강에 개 밥 그릇까지
가마 솥에 누룽지까지
두메 산골 초가 마루 밑까지
뒤져 뒤져 쓸어다 돈딱지

열녀문에 효자비까지
충의지사 공덕비 향내음까지
고려 신라 백제 주춧돌까지
호시탐탐 침 흘리는 인사동

양코쟁이, 게다 신사 납신다
문 열어라 일렬종대 새치기 마라
푸대접 신세 물 건너 가니
침 발라 기름 발라 인사동

(1983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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