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지나갔다.
화려한 축포 속에 요란한 들뜸으로
오욕의 20세기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삶과 자유를 외치며 일어선 농민군을
외세의 총칼을 빌어 압살하며
참으로 서럽게 열어제낀 20세기
100년전 그 모습 그대로 우린 또 한 세기를 보내고 있다.
제 민족을 그들 영위의 제단에 갖다바친 왕권은 몰락했고
그들의 자리에 대동아 공영의 깃발이 휘날렸다.
반도는 그들의 전쟁터로 쑥밭이 되었고
하얀 옷의 사람들은 그들 전쟁의 총알받이로 끌려가
제 나라, 제 부모, 제 자식의 이름 한 번 부르지 못하고 죽어갔다.
선구자들은 만주벌판을 달리며 침략자를 막고
죽음으로 나라를 되찾으려 피를 흘렸지만
어떤 이는 침략자의 꽁무니에 붙어
제 형제들을 팔아 그들의 영화를 챙겼다.
투쟁하지 않는 민족에 대한 역사의 판단은 참으로 가혹했다.
예정된 길을 가듯 그렇게
또 다른 외세는 총과 빵을 주고 이 땅을 점령했고,
우리는 또 다른 이들의 전리품이 되어 있었다.
전쟁.
그들이 부추기고 일으킨 전쟁으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부모가 죽임을 당했고
또, 부모가 보는 앞에서 아이들은 그렇게 죽었다.
제 형제, 제 민족을 분간치 못하는 패륜 속에
우린 우리 스스로를 죽였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또 울었다.
나라를 팔아먹고 전쟁을 일으킨 살인자들은
늘 그렇듯이 민족의 구원자로 흔적 없이 변신하여
온갖 기득권과 돈을 마음껏 주무르며
또 그렇게 백성의 피를 빨았고
그들은 그들 뒤에 항상 절대 총칼의 힘, 외세를 등에 업고 있었고
그들과의 결탁으로 자본, 거대자본은
백성의 마지막 남은 생존마저 핥아먹고 있었다.
거대하지만 작은 우리들, 민중들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앞장섰고 지식인 농민 그리고 노동자가 뒤를 따랐다.
작지만 위대한 용트림으로
그렇게 이 땅 이 나라의 참 주인들은 각성하기 시작했다.
자유를 외쳤고 자주를 외쳤으며 평화와 평등 그리고 해방을 외쳤다.
역시 돈과 권력을 움켜쥔 매국노들에 의해 이들은 쉼 없이 죽어갔다.
이제 노동자가 일어섰다!
노동자가 선봉에 섰다.
노동자 전태일의 불꽃을 가슴에 안고, 피땀의 노동을 발판 삼아
그렇게 노동자들은 일어섰다.
하지만 저들도 만만치는 않았다.
저들은 그들의 철학대로 노동자들의 투쟁에 맞서서
이미 돈과 권력을 움켜쥔 자들답게 수갑과 동냥을 적절히 휘두르며
노동자 투쟁을 무력화 시켜 나갔다.
한 번, 두 번, 열 번, 백 번의 패배는
이제 노동자에게 역사의 정답을 일깨워 주기 시작했다.
그렇다.
자본과 노동의 확연한 갈림을 일깨워 주었고
외세와 민족의 처절한, 하지만 단순한 힘의 법칙을 이해했으며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동자라는 것, 민중이라는 것을
너무도 값진 희생을 하염없이 치르며 알게 되었다.
노동자 민중이 침묵했을 때 역사는 거꾸로 흘러 우리에게 죽음을 강요했다.
노동자 민중이 투쟁으로 각성했을 때 역사는 미소 띈 얼굴로
평화와 공존, 평등과 안녕으로 화답하였다.
그 누구도 이 땅을 목숨으로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역사는 그에 적절히 화답하였다.
초유의 경제위기다 IMF다 떠들어대며
그들이 일으킨 전쟁, 경제 환란의 와중에도
그들 자본은 노동자들을 전선으로 몰아세우며
그 뒤에 빌붙어 그들다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역시, 노동자들은 태생적 억척성과 전투적 노동으로
이 땅을 환란으로부터 구해냈다.
물론 자본과 권력은 그들답게 재정비된 자세로, 새로운 각도로
노동자의 심장에 빨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젠 우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린 과연 이 땅에서 무엇인가?
100년전과 너무도 흡사하게
외세와 거대자본의 전리품으로 간들거리는 대. 한. 민. 국.
더 이상 누구에게 내 민족 내 형제 내 부모를 내맡기겠는가
당할 만큼 당했다.
속을 만큼 속았다.
아플 만큼 아팠으며 죽을 만큼 죽었다.
새 천년 20세기를 열며 우린
삶과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주인된 자세로 반역과 반동에 맞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100년의 쳇바퀴로 돌아 또다시 죽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