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2

정태춘


저 들 밭에 뛰놀던 어린 시절
생각도 없이 나는 자랐네
봄 여름 갈 겨울 꿈도 없이 크며
어린 마음 뿐으로 나는 보았네
도두리 몸 들판 사나운 흙바람
문둥이 숨었는 학교길 보리밭
둔포장 취하는 옥수수 막걸리
밤 깊은 노성리 성황당 돌 무덤
달 밝은 추석날 얼근한 농악대
궂은 밤 동구 밖 도깨비 씨름터
배고 픈 겨울 밤 뒷동네 굿거리
추위에 갈라진 어머님 손잔등을

이 땅이 좁다고 느끼던 시절
방랑자처럼 나는 떠다녔네
이리로 저리로 목적지 없이
고단한 밤 꿈 속처럼 나는 보았네
낙동강 하구의 심난한 갈대 숲
희뿌연 안개가 감추는 다도해
호남선 지나는 김제 벌 까마귀
뱃놀이 양산도 설레는 강마을
뻐꾸기 메아리 산골의 오두막
돌멩이 구르는 험준한 산계곡
노을 빛 뜨거운 서해안 간척지
내 민족 허리를 자르는 휴전선을

주변의 모든 것에 눈뜨던 시절
진실을 알고자 난 헤매였네
귀를 열고, 눈을 똑바로 뜨고
어설프게나마 나는 더러 보았네
길 잃고 헤매는 교육의 현장과
지식의 시장에 늘어선 젊은이
예배당 가득히 넘치는 찬미와
정거장마다엔 떠나는 사람들
영웅이 부르는 압제의 노래와
젖은 논 벼 베는 농부의 발자욱
빛 바랜 병풍과 무너진 성황당
배 겨레 고난의 반도땅 속앓이를

얼마 안 있어 내 아이도 낳고
그에게 해 줄 말은 무언가
이제까지도 눈에 잘 안띄고
귀하고 듣기 어려웠던 얘기들
아직도 풋풋한 바보네 인심과
양심을 지키는 가난한 이웃들
환인의 나라와 비류의 역사
험난한 역경속 이어온 문화를
총명한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과
당당한 조국의 새로운 미래를
깨었는 백성의 넘치는 기상과
한뜻의 노래와 민족의 재통일을

(198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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