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넌 산 애굽은 길로 아이 하나가 올라온다
연광 (年光 :나이)은 이팔 총각 (二八 總角)
초록대님 잡어 매고 개나리 봇짐, 윤유리 지팽이를
우수 (右手)에 툭 툭 짚고 엇 걸어서 올라 오며
시절 (時節) 노래를 부르난디
"어이가리 너 어이를 갈거나
한양성중 (漢陽城中)을 어이 갈꼬
오늘은 가다 어데 가 자며 내일은 가다 어디 자리
자룡 타고 월강 (越江)허던 청총마나 가졌으면
즉시 한양을 가련마는 조그마한 요 내 다리로
몇 밤 자고 가잔 말이냐
불쌍터라 춘향각시,
올라가신 구관자제 (舊官子弟) 이몽룡씨와
백년가약 (百年佳約)을 맺은 후에
수절 (守節)허고 지내는디
신관사또 (新官使道) 도임초 (到任初)에
수청 (守廳)을 아니 든다허고
월삼동추 (月三同推) 수옥중 (囚獄中)에
명재경각 (命在頃刻)이 되었는디
한양 가신 이몽룡씨 가더마는 여영 잊고
일장수서 (一張手書)가 돈절 (頓切)허니
세상에 독허고 모진 양반
서울 양반 밖에는 못 보았네
어서 수이 올라 가서 삼청동를 찾어 가
이몽룡을 뵈옵거든 춘향의 깊은 설움
세해세계에 온정을 달라네"
아이는 올라가고 어사또님은 내려오시는디
어사또님이 그 놈을 지내놓고
가만히 서서 생각을 해보니 방자가 틀림없거날
내가 저 놈을 불러 물어 볼 수 밖에는 없는디
저 놈이 천성이 방정맞은 놈이라
내 본색을 알리고 보면 누설 (漏洩)이 될 것이나
그렇다고 아니 물어 볼 수도 없고
좌우지간 불러 보는 수 밖에
"아나 이 애 저기가는 애야"
저 놈이 힐끗 돌아보며 대답도 않고 서 있거날
"이 자식, 어른이 부르면 썩 오는 것이 도리 옳지
가만이 서서 쳐다 보기는 이놈"
방자란 놈이 남원서 어긋 나기로 유명한 놈인데
어사또를 바라보니 하도 헐게 차려 논 것이
제 마음에 더 가소롭던 것이었다.
어사또 턱 밑에 바싹 들어서며
"당신 나 불렀소?""오냐불렀다"
"바쁘게 가는 사람 왜 부르요"
"이 자식 너 어디 사느냐?"
"아이갸 그 말 물어볼라고 불렀소?
예, 내가 살기는 다 죽고 나 혼자 사는데 사요"
"이 놈아 혼자 사는데가 어디 있단 말이냐?"
"나만 산게 혼자 산거 아니요"
"오, 가만 가만 남원?
오 너 남원 산단 말을 나만 산다고 허는구나?"
"하하하하 맞었소 맞어
아이고 당신 죽도 않고 귀신 다 되얐소 잉?"
"에라 이놈 그래 너 어디 가느냐?"
"양반 독차지헌디 가요"
"한양간단 말이로구나"
"아따 이양반이 소강절 (邵康節) 뒷문에
움막 지고 살았네 갑네요"
"하 그놈 괘씸헌 놈이로고!
그래 한양엔 누구를 찾어 가는고?"
"나 한양 묵은댁에 가요"
"묵은댁이라 짚시락 두터운 데도 아닐게고
너 구관댁 (舊官宅)에 간단 말이로구나"
"허 허 워따메! 당신이 귀신이 아니라
귀신 잡어 먹고 도깨비 똥 싸겄소"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이 있느냐?
그래 구관댁에는 어찌하여 가느냐?"
"왜 그렇게 꼬치 꼬치 물어쌌소?"
"내가 알아야 할 일이 있어 그런다"
"꼭 알아야 겠소?""오냐"
"그럼 내가 바쁜 게로 얼른 일러 주고 가지라오
내가 우리 골 남원 옥중 (獄中) 춘향 편지를 갖고
구관댁 이몽룡씨를 찾아 갑네다.
말 다했응게 나 가요 잉"
"이 얘 이 얘 그 초면에 무례한 말이다 마는
그 편지 잠깐 보여줄 수 없겠니?"
"허허 이놈의 어른이
염치없는 소리 허고 자빠졌네 그려
생김새는 점잖허게 생겨갖고 아 여보시오
남의 규중 (閨中)편지 사연을 무슨 말을 쓴질 알고
함부로 보잔단 말??요 이놈의 어른아"
"네가 무식허단 말이로다 옛 글에 이르기를
부공총총설부진 (復恐聰聰총說不盡)하여
행인임발우개봉 (行人臨發又開封)이라 하였으니
잠깐 보고 돌려 준들 무슨 허물 되겠니?"
문자 하나 모르는 놈이 그 문자를 아는 척 허느라고
"아따 그 채린 조격보다는
문자 속은 바로 거드러 졌네 그려
내가 편지 줄 일은 아니오마는
당신 문자 쓰는 것이 하도 신통해서 주는 것이니
얼른 보고 주시오 잉?"
어사또 편지 받어 떼어보니 춘향 글씨가 분명코나
편지 사연에 하였으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