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 천명 시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불을 돋운 포장(布帳) 속에선
내 남성(男聲)이 십분 굴욕된다.
산 너머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날이면 떠남을 짖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소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와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