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 비야

정태춘

오늘은 오랜만에 재 너머 장서는 날 아버지
조반 들고 총총히 떠나시고 어머님
세수하고 공연히 바쁘시고 내 누이
포동한 볼, 눈매가 심난하다 어린
소 몰아몰아 아버님 떠나시자 분단장
곱게 하신 어머님도 간데 없고 영악한
우리 누이도 샛길로 숨어가고 산중의
초가삼간 애기 하나가 집을 본다 산중의
애기 하나 혼자서 심심해라 우리 오매
어디 가고 우리 누이 어딜 갔나 열린
문 저기 넘어 너두야 따라갈래 재
너머 장거리엔 구경거리 많다더라 장거리
구경거리 꿈에나 보자는지 애기는
제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깊은 잠 못자는데 애기네
집 마당엔 먹구름 몰려온다 배고파
깨인 애기 빗소리에 귀가 번쩍 문밖을
내다보다 천둥번개에 놀라고 그래도
꿈쩍 않고 신기한 듯 바라보다 무슨
소견 제 있는지 입속으로 중얼댄다 비야
비야 오지 마라 재너머 장거리에 소
팔러간 우리 아배 좋은 흥정에 일 다
보고 대낮 술에 취하시어 가슴도 후끈한데 후드득
소낙비에 소주 탁주 다 깨신다 비야
비야 오지마 라 재너머 장거리에 사당패
짓거리에 넋이 나간 우리 오매 죄는
가슴 땀나는 손 소낙비에 흥 깨지고 정성들여
곱게 하신 분단장도 지워진다 비야
비야 오지 마라 재너머 장거리에 몰래
나간 우리 누이 비 맞으면 혼이 나고 포목전
예쁜 옷감에 공연히 설레이다 이리
질척 저리 질척 장구경도 다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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