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우리 얘기 좀 할까? 응?
너도 여기 온지 꽤 됐으니까 뭔가 주고 가야지.
부담갖지마라.
예-아니요로 대답할 수 있는 건,
예-아니요로 대답하고
서술이 필요하면 좀더 길게 얘기해도 돼.
담배피면서 할래?
...
(한숨) 5월 20일 10시경.
12시가 안돼서 검거됐네?
호텔주차장에서 잡혔고.
시간상으로 좀 버벅댔구나? 응?
달리기가 느린가?
아니면 방에서 힘을 너무 많이 뺏나?
하긴 많이도 찔러댔더구만. 응?
어차피 한번 찔러도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뭐, 목을 조르면 더 괜찮기도 하지.
자, 인적사항부터. 쉽게 하자.
컴퓨터 두들기면 다 나오는 거,
내가 그냥 쓰는 거라고 생각하고 골질하지마라.
이름?
...
(한숨) 저기야, 이런 건 그냥 얘기해도 돼.
네가 묵비권을 하던지,
아니면 쉽게 뱉은 말이 나중에 불리해진다던지,
네가 짱구를 굴려야될때가 언제인지,
그런 건 얘기해줄게.
그러니까 내가 ‘이건 얘기해도 된다’하는 건
그냥 얘기해.
그리고 ‘이건 잘 생각해서 얘기해라’라고
하는 부분은 네가 잘 생각해서 대답을 하던지,
묵비권을 하던지, 그건 네 마음대로 하면 된다.
알았어?
...
이름.
...
아~ 네 이름이 김영훈이잖아. 그지?
내가 ‘이름?’하고 물으면
‘김영훈입니다.’라고 대답하면 되지?
내가 ‘네가 어디 김씨냐’고
‘파는 무슨 파’고
‘네 이름에 담긴 숨은 의미’에 대해
묻는 게 아니잖아 지금.
김영훈! 네 이름 말해 이 새끼야!
김영훈입니다.
후... 더 열 받잖아, 응?
물어볼 때 대답하면 되잖아?
사람 죽일 때... 기분이 어떻죠?
뭐?
사람 죽일 때요, 제정신이 아니겠죠?
그러니까 죽이겠죠?
죽이는 순간에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짧은 순간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거겠죠?
그래? 나한테 물어보는 건가?
사람 죽일 때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럼 나도 하나만 물어보자.
제정신이 아닌 놈들은 죄다 사람을 죽이냐?
아니면 사람 죽는 곳에는
주변에 항상 제정신 아닌 놈들만 있나?
온전한 정신일 땐 죽어도 사람을 죽일 수 없냐,
그러면 사람을 죽이려다 실패한 놈들은
덜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런 거냐?
하나만 더 묻자.
넌 지금 내가 제정신으로 보이니?
너 되도 않는 말 씨부렁거리지 마라, 응?
김영훈, 너 대학 나왔더라?
너 이제부터 나한테 얘기할 때
1형식 문장으로만 말해.
주어, 동사. 그거로만 말하라고.
쓸데없는 목적어나 목적보어,
형용어구, 관용어구 넣었다간
이빨 다 부셔버릴거야, 알았어?
나는... 알았습니다.
휘발유통 왜 들고 갔어?
나는 불을 지르려고했습ㄴ...
3형식이잖아, 이 개새끼야!
목적어 불을 빼고,
‘난 범인입니다’ 혹은 ‘난 모릅니다’
아님 ‘내가 그랬나요?’ 이렇게 얘기해.
휘발유통 왜 들고 갔어?
나는...후. 힘듭니다.
뭐가?
1형식은 힘듭니다.
그래서?
나는...편한 것이...
좋아. 자유롭게 얘기해.
휘발유통 왜 들고 갔어?
불을 지르려고 했습니다.
왜? 죽였으면 됐지, 불은 뭐하려고?
신원확인때문에? 너 돌대가리니?
호텔방에 자기이름으로 예약한 사람
신원확인이 뻔하게 되는데,
불을 지를 이유가 없잖아. 너 바보야?
전 그 여잘 죽이려고 했습니다.
근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넌 그 여잘 죽였어.
그리고 마저 불을 내려다
못 내고 도망쳐 나왔잖아!
제가 왜 도망을 쳤죠? 아무도 없었는데?
불을 지를꺼면 질러도 될 걸, 누구도 오지 않고
어떤 이유나 상황이 발전되지도 않았는데
제가 왜 도망을 쳤을까요?
나한테 질문 하냐?
네가 나 조사 하냐, 이 씨발놈아!
노트북줄까? 칠래?
제가 왜 불을 못 질렀을까요?
라이터가 없었냐? 아니면 밤에 오줌쌀까봐?
아닙니다...왜나면!
그녀가 이미 죽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서 그녀를 봤을 때,
그녀가 핏물에 잠겨 죽어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위에 휘발유를 붓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죽어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