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계절이 지나간 자리
한숨을 고를 새도 없이
어리석은 마음에 또다시 자릴 내주고
4월엔 개나릴 물들이고
여름 빗물에 흘려보내어
여름 지나 가을엔 또다시 코스모스를 피워냈네
시린 겨울의 바람을 모르는
사람처럼 바보처럼 이렇게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따사로워서
조금만 더 이대로
기다려줘 네가 머문 그곳에
나 천천히 뿌리를 내릴게
언젠가 내 맘이 다 가라앉으면
그때는 너에게 갈게
걸음걸음마다 부서진 자리
갈라진 틈을 메울 새 없이
어느새 소중해져 버린 당신을
가슴에 품고
닳고 닳아 해어질 만큼
수백 번 그린 너의 얼굴
나도 모르는 사이 너무나 많이
네 이름을 불렀네
반짝 지나갈 초록빛 찰나를
아이처럼 처음처럼 이렇게
놓아줄 수가 없어 꼭 끌어안고서
조금만 더 이대로
내가 갈게 네가 있는 그곳에
내 두 발을 내디뎌 보일게
깊어지면 끝이 날까 끝은 언제나 있나
두려운 새 계절의 시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