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파탈리테

심규선 (Lucia)

춤을 추는 치맛자락인가
퇴색해가는 금빛 하늘인가
찰나의 한순간만 아름다운 것
그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

새벽에 핀 은빛 목련인가
나비가 벗고 떠난 허물인가
세상에 모든 아름다운 것 중에서도
가장 쉽게 시드는 것
사랑

파탈리테 fatalite
나는 너를 따라 어디든 가리
새장 속에 갇혀 노래하던 나를
꺾인 날개 펼쳐 달의 어깨 위를 날게 해
이젠 눈이 멀어도 좋아

닫힌 창을 두드리던 소낙비에 꿈에서 깨어
잠겨있던 그 작은 틈을 열었네
도둑처럼 노래처럼 너의 시가 타고 들어와
이제는 결코 전과 같지 못하리

파탈리테 fatalite
나는 너를 따라 어디든 가리
새장 속에 갇혀 노래하던 나를
꺾인 날개 펼쳐 달의 어깨 위를 날게 해
이젠 눈이 멀어도 좋아
내가 숨이 멎어도 좋아

오랫동안 너의 입속에
묶여 있던 그 언어로
밤의 침묵이 멎을 때까지
나의 목소리 멎을 때까지

파탈리테 fatalite
나는 너를 따라 어디든 가리
새장 속에 갇혀 노래하던 나를
꺾인 날개 펼쳐 달의 어깨 위를 날게 해
이젠 눈이 멀어도 좋아
내가 숨이 멎어도 좋아

춤을 추는 치맛자락인가
나비가 벗고 떠난 허물인가
찰나의 한순간만 아름다운 것
가장 쉽게 시드는 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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