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김필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 더 지치곤 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 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해는 높이 떠서 나를 찌르는데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어느새 다가와 내게 인사하고
노랠 흥얼거렸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 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내 모든 걸 바쳤지만
이젠 모두 푸른 연기처럼
산산이 흩어지고

내게 남아 있는 작은 힘을 다해
마지막 꿈 속에서
모두 잊게 모두 잊게
해 줄 바다를 건널 거야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 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나는 영원히
나는 영원히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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