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소리 <추풍감별곡>의 사설이 빼어나서 판소리 명창들이 <추풍감별곡>의 사설 중 일부를 뽑아서 부른 것이 <추월강산>이라 하는데, 지금은 잘 불리워지지 않는다. 박헌봉은 <추월강산>을 단가로 분류했는데, 일제 때 발매된 음반에는 춘향가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연인이 이별하고 여자가 남자를 그리워하는 사설로 되어 있어서, 춘향이가 이도령과 이별한 후 낭군을 그리워하는 대목으로 쓰일 만하다. 그래서 사설의 내용으로 보아 음반에 춘향가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고, 춘향가에 넣어 부르지 않고 단가로 독립시켜 부렀을 가능성도 있다.
일제 때 배설향(일축죠션소리판 K828-A.B, 20625.20626, 추월강산 상.하), 박록주(Columbia 40082-A.B 추월강산 상.하)도 녹음한 바 있는 곡이다. 여기 담겨있는 <추월강산>은 이중선이 1929년 11월에 녹음한 것인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제법 잘 부르고 있다. 원래 이중선은 <추월강산>을 유성기음반의 양면에 취입하였는데, 빅타 원반 중에 그의 <추월강산>의 앞부분에 해당되는 앞면 원반이 없어서 이번에 이중선의 <추월강산> 뒷부분만 복원하게 되었다.
원반 : Victor KJ-1305-B(KRE1145)
초판 : Victor 49062-B
녹음 : 1929. 11. 11
(진양)
시르르르르 실피 울어 잠든 임을 깨우고져. 그리도 못 헐진데 두견의 넋이 되야 꾀꼬리 사설 빌어 공산으 만수음을 귀촉도 실피 울어 임으 귀에 들렸으면 가삼으 돌 같이 뭉친 한을 풀어볼까. 세우삼경야으 불여귀만 실피 운다. 잔등을 돋우키고 시름 섞어 앉었으니, 답답헌 임으 생각 날 새는 줄 모르것네. 금안백마 금정으로 후회없이 가자헌들 전일 사생 기약임에 갈 수도 없는 내 신세야. 낭군 그리워 사지를 말고 차라리 죽어서 염왕끄 발관을 허고 임을 맞아 다려다가 이생의 미진한을 후생으나 기약허고 이별없이 살고지고. 시름을 얼크내여 부동허여 비파강으다 풍덩 들이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