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봉사, 뺑덕어멈과 황성길 떠나는데

김수연

(아니리)
낮이면 강도에 가 울고 밤이면 집에 돌아와 울고 눈물로 세월을 보낼 적에 심봉사가 의식은 겨우 견디나 사고무친 수족없어 사람 하나를 구하라고 할 적에 마침 본촌에 사는 뺑덕이라는 여자가 있는디 심봉사가 전곡 있단 말을 듣고 동네 사람도 모르게 살짝 자원 출가를 하였는디 이 뺑덕이네가 심봉사 재산을 꼭 먹성질로 망허는디
(자진모리)
밥 잘 먹고 술 잘 먹고 고기 잘 먹고 떡 잘 먹고 약식 주고 술 사 먹고 벼 펴 주고 고기 사 먹고 동인 잡고 욕 잘 허고 행인 잡고 패악허고 이웃집에 밥 붙이기 잠자면 이갈기와 배 끌고 발목 털고 한 밤중 울음 울고 오고가는 행인들게 담배 달라 실랑허고 정좌 밑에서 낮잠 자고 남의 혼인 허랴허고 단단히 믿었는디 해담을 잘 허기와 신부 신랑 잠 자는디 가만 가만 가만 가만 뒤로 살짝 돌아가 봉창에 입을 대고 “불이여” 힐끗허면 핼끗허고 핼끗허면 힐끗하고 삣죽허면 뺏족허고 뺏족하면 삣죽허고 이 년의 행실이 이러 허여도 심봉사는 아무런 줄 모르고 아주 뺑파에게 콱 미쳤것다
(아니리)
하루는 심봉사를 관가에서 불러 들어가니 사또 허신 말씀 “지금 황성서 맹인 잔치를 있는디 잔치 참여 아니하면 그 고을 수령은 봉고 파직을 한다고 관자가 내렸으니 즉시 올라가라” 노비까지 후이 주니 심봉사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와 “여보 뺑덕이네 아 날 더러 황성 맹인 잔치를 가라하니 나 혼자 어찌 갈게” “아이고 여보 영감 황성천리 먼 먼길을 아 영감 혼자 어찌 가신단 말씀이요 여필종부라 허니 천리라도 따라가고 만리라도 따라가지요” “열 열 열녀로다 아 다 보아도 우리 뺑파 같은 사람은 못 보았고 그러면 돈냥이나 있는 것 뉘게다 맡기고 갈꼬” “아이고 저러기에 외정은 살림 속을 몰라 아 낳도 못 허는 애 선다고 살구 값 팥죽 값 떡 값 그리 저리 제하면 무슨 돈 있것소” “잘 쳐 먹었다 그나저나 계집 먹은 것 쥐 먹은 것이라니 그만 두고 우리 황성길이나 떠나세” 심봉사가 뺑덕이네 앞을 세우고 황성 길을 떠나는디
(중모리)
“도화동아 잘 있거라 인제 내가 떠나가면 어느 년 어느 때 오라느냐 어이 가리라 어이 가리 황선 천리를 어이 가리 오날은 가다가 어디가 자며 내일은 가다가 어데 가 잘고 유황숙의 단계 뛰던 적토마나 있거드면 이 날 이 시로 가련마는 앞 못 보는 병신 몸이 몇 날을 가면 황성을 가리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자룡 타고 월강허든 청총만학 있거드면 이 날 이 시로 가련마는 몇 날 걸어 황성 가리 여보소 뺑덕이네” “예” “길 소리나 좀 멕여주소 다리 아퍼 못 가것네” 뺑덕이네가 길 소리를 메기난디 어디서 들었다는지 충청도 김매기 반 경상도 메나리조로 반으로 한 번 매겨 보난디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황성 천리를 어이 가리 날개 돛인 학이나 되면 펄펄 수루루 날아 이 날 이 시로 가련마는 몇 날 걸어 황성 가리 어이 가리너 어이를 갈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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