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 (시인: 윤동주)

김세한

♣ 참 회 록 (懺悔錄)

- 윤동주  시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 년(滿二十四年)일 개월(一 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어두운 일제치하에서의 비참하고 값없는 삶을
참회하는 작품으로 “파란 녹이 낀 구리 가을”이란
망국민의 어두운 현실을 비유한 것이다.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 모양”에서는 차가운 일제의 감옥에서
쓸쓸히 죽어간 시인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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