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 연 송
- 정공채 시
한학(漢學)의 할아버지
존경하는
할아버지의 장죽에서
대청 높이 올라가던
한 가닥 고운 명주실 같은 도도함이
눈부시던
햇빛 맑은 어릴적 그해 가을부터
저 놈을 어서 피어야지 했다.
호방한 아버지의
파이프에서
일을 다 마친 뒤
잘도 퉁겨져 나와서도
약간은 불손하게 모락모락
계속 타오르고 있는 저 놈을
끝까지 다 내가 태워 버려야지 했다
누구에게나 세월이 가던
그런 몇 해가 흘러간 뒤로
할아버지보다 먼저
뇌일혈로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유난히 쓸쓸하게 보이던 할아버지의 장죽도
몇해를 인가
그 장죽을 거두시고 떠나셨다.
이젠 내가 태우는 담배는
적어도 대를 물린 것이다.
사내대장부가 손에 꽃이야 들고 있겠는가
더욱이 장시간 한손에 술잔을 들고 앉더라도
남은 빈손에야
꽃쯤으로 알고 이 놈을 지긋이 물수도 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