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은 시간 공부하는 척 딴 생각에 몰두해 있을 때
엄마는 내 방 불 꺼질 때까지 거실에서 책을 읽곤 했어요
엄마는 워낙 책을 좋아해서 피곤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졸음을 쫓으려 찬물 세수에
유난히 붉어진 얼굴은 그저 무심히 넘겨버렸죠
어느 아침엔 맘에도 없는 괜한 짜증에 밥도 먹지 않고
다녀온다는 인사도 없이 훌쩍 집을 나서버린 적 있죠
엄마는 원래 성격이 좋아서 아무렇지 않을 꺼라 믿었죠
아침을 거른 게 맘에 걸려서
종일 걱정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한 건 생각도 못했죠
엄마의 병은 우리가 만든 것 같아요
그 긴 시간을 조금씩 멍들게 했어요
그 연약한 몸에 독을 쌓아가도 우린 아픈 줄도 몰랐던 거죠
정말 어리석은 우리가 너무 못돼먹은 내가 그렇게 만든 거죠
풀리지 않는 모든 일들에 갈피를 잡지 못한 시절에
내 부족함을 엄마의 탓인 양 원망 섞인 울음도 울었었죠
엄마는 원래 마음이 넓어서 상처 받지 않을 꺼라 믿었죠
한잠도 못자고 몰래 울어서
퉁퉁 부은 두 눈은 끝내 알아채지 못했던 거죠
책을 좋아했던 엄마는 마음이 넓던 엄마는 그래서 아픈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