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시인: 엘리어르)

이선영

♣ 황 무 지

-엘리어트

한번은 쿠마에서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소년들이 “당신은 무엇을 원합니까?”하고 물으니,
무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죽고 싶다.”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1. 사자(死者)의 매장(埋葬)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불모의 땅에서 라일락을 꽃 피게 하고,
추억과 정욕을 뒤섞어,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어나게 한다.
겨울이 차라리 따스했었나니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메마른 구근으로 작은 목숨을 이어줬거니.
여름은 난데없이 쉬타른 베르거 호수를 건너
묻어 오는 소나기로 덮쳐온지라, 우리는 회랑에서 머물렀다가
햇빛 속을 공원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고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소.
나는 러시아인이 아니라 리투아니아 출신의 순수한 독일인이오.
어렸을 때는 사촌인 대공(大公) 집에 있었소.
사촌이 날 썰매에 태웠기 때문에
아주 무서웠어요. 사촌이 말하기를
마리, 마리 꼭 붙들어, 그리고 함께 미끄러져 내렸지요.
산 속에 있으면 느긋해지지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에는 남쪽에 가지요.

이 시는 1)죽은 자의 매장 2)체스 놀이 3)불의 설교 4)익사 5)천둥의 말로 구성된 전문 중 1)장의 서두에 해당 되는 부분이다. 이 시에서 “항무지”는 종교의 기둥을 잃어버린 현대 일반의 정신적 황폐와 제1차 세계대전 뒤의 유럽의 페허를 동시에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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