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속의 기도.
- 신동춘 시
'일엽 스님도 춘원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더랍니다.' 하고 애자는 다음날 삭발을 했습니다.
속 깊이 박힌 비수를 뽑아줄 이가 없어 끝내는 부처님 손을 빌어야 했던 여자가 어디애자 하나일까만은
밤마다 꿈에 온다는 남자를
'까닭 없습니다.' 했다가 '그것만은 맘대로 안 되대요.' 하고 고쳐 말할 때는 커다란 눈망울이 썸찍하도록 빛나곤 했기에.
눈 펄펄 날리던 날, 날 선 칼 아래 빡빡 밀려나간 그녀 까만 머리를 내가 대신 죄대게시리 자꾸 아까워합니다.
며칠이나 코감기를 핑계삼아 손수건을 소매춤에 넣고 다니며 밥을 푸다가 마루를 닦다가 멀건 눈물을 꼭꼭 찍어내니 저 애가 어쩌려고, 어쩌려고....
천 길 낭떠러지 위에서 잡았던 나뭇가지를 탁 놓아버린 순간에도 못된 남자는 탁 놓아주지 않았는가 저래 자채기가 나고, 밥상에서 누가 숭늉을 찾으면 뉘 일어날세라 앞질러 일어서 나가기도 하나본데...
흰 눈이 가지마다 머울어 약사건 앞뜰만 이렇게 일 없이 멘뎃사람 생각나도록 아름다우면 어쩝니까.
달만 자꾸 차서 잠 깨우도록 마당을 밝히시면 어쩝니까.
'애자 아픈 속의 비수를 어서 뽑아 주셔요.'
애자는 큰 스님이 되십니다.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