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터 잡는데

흥보가

(아니리)
그때여 흥보를 살리려고 중이 하나 내려 오는디

(엇모리)
중 나려온다 중 하나 나려온다. 저중의 거동 보소. 허디헌 중 다 떨어진 송낙 요리 송치고 조리 송치고 호흠벅 눌러 쓰고 노닥노닥 지은 장삼 실띠를 띠고 염주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어 소상반죽의 열두 마디 용두 새김 육환장채 고리 길게 달아 처절철 처얼철 흔들흔들 흐늘거리고 나려오며 염불하고 나려온다. 이아에 이히 에이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상내소수공덕해요 회향삼처실원만 봉위 주상전하 수만세요 왕비전하 수제년 세자전하 수천추 국태민안 법륜전 나무아미타불. 흥보 문전을 당도허니 개 커겅컹 짓고나면 이댁에 동냥왔오. 흥보가 깜짝 놀라 여보 마누라 우지마오 밖에 중이 왔으니 우지를 마오.

(아니리)
흥보가 나가보니 중이 왔거날,
“여보 대사님 내집을 둘러보오. 서발장대를 휘둘러도 거칠 물건 하나 없는 집이요.”
저 중이 대답허되,
“소승은 걸승으로 댁 문전을 당도허니 곡성이 낭자키로 생사가 마판이라 무삼 연고 계시오니까.”
흥보가 대답허되,
“권솔들은 다솔하고 먹을 것이 없어 죽기로서 우는 길이요.”
“거 가긍한 말이요. 복이라 허는 것은 임자가 없는 것이니 소승의 비록 아는 것은 없아오나 집터 하나를 잡아 드리리다.”

(진양)
박흥보가 좋아라고 대사뒤를 따러간다. 이 모롱을 지내고 저 고개를 넘어서서 한 곳을 당도허여 그 자리에 우뚝 서더니마는 이 명당을 알으시오. 천하지제일강산 악양루 같은 명당이니 이 명당에다 대강 성주를 허시되 임좌방향 오문으로 대상 성조를 허게되면 명년 팔월 삼십일에는 억십만금장자가 되고 삼대진사 오대 급제 병감사가 날 명당이 적실허니 그리 알고 잘 지내오. 한 두 말을 마친 후에 눈을 들어 사면을 둘러보고 손을 꼽아 생각허더니마는 인흘불견 간 곳이 없다.

(아니리)
그제야 도승인 줄 짐작허고 있던 집을 헐어다가 그 자리에다 집을 짓고 살아갈제, 차차차차 살림이 나아지거날 흥보가 좋아라고 하루는 집터글자를 부쳐본즉,

(중중모리)
겨울동자 갈거자 삼월 삼질에 올래자 봄춘자가 좋을시고, 행화분분 도화요 이화만지 불개문하니 실실동풍에 꽃화자 나비접자 훨훨 춤출무자가 좋을시고. 꾀꼬리 수리룩 날아 노래가 자가 좋을시고. 기는건 짐생수 나는 것은 새조라 쌍쌍이 왕래허니 제비연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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