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이가 두 손에 잔뜩 풀을 들고서 “풀은 무엇인가요?” 하고 내게 묻는다.
내 어찌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아이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필연코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짜여진 내 천성의 깃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것은 주님의 손수건이지만. 하느님이 일부러 떨어뜨린 향기로운 기념품일 터이고.
소유자의 이름이 어느 구석에 적혀 있어 우리가 보고서 “누구의 것”이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추측하노니-풀은 그 자체가 어린아이. 식물에서 나온 어린아이 인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모양이 한결같은 상형 문자일 테고 그것은 넓은 지역에서나 좁은 지역에서도 싹트고. 흑인과 백인. 캐나다인. 버지니아인. 국회의원. 검둥이.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고 또한 받는다.
또한 그것은 무덤에 돋아 있는 깍지 않는 아름다운 머리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너 부드러운 풀이여. 나 너를 고이 다르리니 너는 젊은이의 가슴에서 싹트는지도 모를 일이요.
내 만일 그들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그들을 사랑 했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너는 노인들에게서나. 생후에 곧 어머니들의 무릎에서 떼낸 갓난아이에게서 나오는지도 모르는 터. 자. 그리고 여기에 그 어머니의 무릎이 있다.
이 풀은 늙은 어머니들의 희 머리로부터 나온 것 치고는 너무도 검으니. 노인의 빛 바랜 수염보다도 검고. 연분홍 입천장에서 나온 것으로 치더라도 너무나 검다.
아. 나는 결국 그 숱한 발언 들을 이해하나니.
그 발언들이 아무런 뜻 없이 입천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젊어서 죽은 남녀에 관한 암시를 풀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것뿐만 아니라.
노인들과 어머니와 그리고 그들의 무릎에서 떼어낸 갓난아이들에 관한 암시도 풀어냈으면 싶다.
그 젊은이와 늙은이가 어떻게 되었다 생각하며.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어딘가에 살아 잘 지내고 있을 터이고.
아무리 작은 싹이라도 그것은 진정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표시해 주고 있지 않는 것일지니. 만일에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삶을 추진하는 것이지 종점에서 기다렸다가 삶을 붙잡는 것은 아니다.
만물은 전진하고. 밖으로 전진할 뿐 죽는 것은 없고. 죽음은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리 행복한 것이다.